갈라디아서 3:1-29
연구 노트
무분별한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여기에 “무분별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아노에토스)가 사용되었다고 해서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성이 부족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사전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이해하기 위해 정신 능력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앞서 이야기한 내용에서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은 모세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갈 2:15-21) 예수께서는 이미 그들을 모세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다. (갈 2:21 연구 노트 참조) 어리석게도 일부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 귀중한 자유를 버리고, 그들을 정죄할 뿐이며 이미 효력을 상실한 율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갈 1:6) 바울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간 그들을 “무분별한 갈라디아 사람들이여!”라는 말로 꾸짖었다.
갈라디아 사람들: 바울이 전파한 지역인 갈라디아 남부의 회중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갈 1:2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을 미혹했습니까?: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바스카이노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마법을 걸다” 또는 “주문을 걸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많은 영어 성경 번역판에서도 그렇게 번역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어에서 이 동사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으므로, 마법을 이용해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바울은 이 단어를 다른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갈라디아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영적인 행로로 시작하고서는: 직역하면 “영으로 시작하고서는”.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원래 영적 장성으로 나아가는 행로를 걷고 있었다. 그 행로를 걷기 시작했을 때에는 하느님의 성령과 일치하게 행동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랐다.
육적인 행로로 마치려고 합니까?: 직역하면 “육으로 마치려고 합니까?”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는 “영적인 행로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들, 특히 할례를 옹호하고 모세 율법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갈 3:1; 5:2-6) 그러한 “육적인 행로”를 따르면 영적 장성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잃게 될 수 있었다.—갈 6:8.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창 15:6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다1 및 다2 참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테오스(하느님)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현존하는 「칠십인역」 사본들에서 창 15:6에 나오는 표현을 가져온 것 같다. 대부분의 번역판들에서 이 부분을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인용한 창 15:6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 들어 있으며, 따라서 「신세계역」에서는 본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롬 4:3과 약 2:23에도 창 15:6 전체가 인용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 할례 계약은 원래 아브라함과 맺어진 것이었다. “거짓 형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켜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한 것 같다. (갈 2:4; 3:1, 2; 창 17:10. 용어 설명 “할례” 참조) 하지만 바울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즉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갈 3:9. 갈 3:29 연구 노트 참조.
믿음을 가졌던: 이 구절에서 “믿음을 갖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피스토스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신뢰 즉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충실하다”는 의미도 담고 있을 수 있다.—고후 6:15 연구 노트 참조.
“누구나 저주를 받는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신 27:26을 인용한 것인데, 그 구절에서는 만약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따르겠다고 한 율법을 어기면 (출 24:3)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알려 준다. “저주를 받다”라는 표현(그리스어 에피카타라토스)은 하느님의 정죄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용어 설명 “저주” 참조) 바울은 모든 유대인들이 아담의 죄뿐만 아니라 율법의 저주로부터도 구속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롬 5:12; 갈 3:10-13. 갈 3:13 연구 노트 참조.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인해 살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합 2:4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인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참된 근거가 율법을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롬 10:3, 4. 롬 1:17 연구 노트 참조.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은 자가 되심으로: 모세 율법에 따르면, 율법 계약 아래 있으면서 율법을 어기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어 있었다. (갈 3:10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신 21:22, 23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의 몸이 기둥에 달렸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위해 저주받은 범죄자로 기둥에 달리셔야 했다. 그분은 율법이 그들에게 지운 저주를 온전히 짊어지셨다.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은 누구나 그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바울이 한 말은 예수께서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과 비슷한 사상을 담고 있는 것 같다.—요 3:14 연구 노트 참조.
기둥: 행 5:30 연구 노트 참조.
계약: 그리스어 디아테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33번 나오는데, 항상 “계약” 또는 “합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 26:28; 눅 22:20; 고전 11:25; 갈 3:17; 4:24; 히 8:6, 8; 10:16, 29; 12:24) 여러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디아테케를 “유언”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이 구절의 문맥(갈 3:16-18)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논하고 있으므로 이 구절에서도 디아테케를 “계약”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갈 3:17 연구 노트 참조.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바울은 영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의 주된 부분이라는 것을 밝힌다. (문자적으로 “씨”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스페르마는 메시아에 관한 여호와의 약속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 주로 “자손”으로 번역되었다. 부록 가2 참조) 에덴에서 반역이 있은 뒤 여호와께서는 “여자”에게서 나온 “자손”이 뱀 즉 사탄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 3:15)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통해, 그의 자손이 인류에게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밝혀 주셨다. (창 12:1-3, 7; 13:14, 15; 17:7; 22:15-18; 24:7; 갈 3:8) 또한 하느님께서는 그 자손이 유다 지파 출신인 다윗왕의 후손일 것이라고 알려 주셨는데, 예수께서는 실제로 다윗의 후손이셨다. (창 49:10; 시 89:3, 4; 눅 1:30-33. 이 구절에 나오는 네 자손들에게 … 네 자손에게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갈 3:26-29에서 바울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영적인 성취에 관해 논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의 이차적인 부분이 있을 것임을 지적했다.—갈 3:29 연구 노트 참조.
네 자손들에게 … 네 자손에게: 직역하면 “네 씨들에게 … 네 씨에게”. 바울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하신 약속들을 언급한 것이다. (창 12:7; 13:14, 15; 17:7; 22:17, 18; 24:7) 아브라함의 “자손”(직역하면 “씨”)에 관한 약속들에서 “자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그리스어 단어는 모두 단수 형태로 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단어들은 집합적인 의미의 자손을 가리킨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어 스페르마의 복수형(“자손들”)과 단수형(“자손”)을 대조하면서 말한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베푸실 축복에 대해 말씀하실 때 주로 한 분 즉 그리스도를 언급하신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땅의 모든 가족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에서 그 “자손”에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이 포함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들과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들의 자손들은 인류를 축복하는 데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속된 자손은 이삭을 통해 나오게 되어 있었으며, (창 21:12; 히 11:18) 점차 이삭의 아들 야곱의 후손, (창 28:13, 14) 유다 지파, (창 49:10) 다윗의 가계로 (삼하 7:12-16) 좁혀졌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바로 그 가계 출신이셨다. (마 1:1-16; 눅 3:23-34) 그렇기 때문에 기원 1세기의 유대인들은 구출자인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오실 한 분을 찾고 있었다. (눅 3:15; 요 1:25; 7:41, 42)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은혜를 받은 백성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라고 생각했다.—요 8:39-41.
…라고 하지 않고,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어로는 이 동사의 주체가 바울이 인용한 성구가 될 수도 있고 하느님이 될 수도 있다. 이 동사의 주어는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울이 인용한 성구이다. 따라서 “…라고 되어 있지 않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로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동사의 주어를 현재의 표현처럼 하느님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느님께서 전에 맺으신 계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가리킨다. 이 계약은 기원전 1943년에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강을 건넜을 때 발효된 것 같다. (창 12:1-7) 율법 계약은 그로부터 430년 뒤인 기원전 1513년에 맺어졌다. 그 계약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무효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계약에 더해진 것이었다. 율법 계약은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했다.—갈 3:15, 16. 갈 3:24 연구 노트 참조.
계약: 또는 “합의”. (갈 3:15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계약” 참조)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칠십인역」에서 “계약”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읽을 때 그것을 히브리어 베리트를 번역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 히브리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계약” 또는 “합의”라는 의미로 250회 이상 사용되었다.—출 24:7, 8; 시 25:10; 83:5, 각주. 고후 3:14 연구 노트 참조.
430년: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이 맺어진 때부터 모세 율법 계약이 맺어진 때까지의 기간을 430년이라고 말한다. 여호와와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발효된 때는 기원전 1943년에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하느님께서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유프라테스강을 건넜을 때였던 것 같다. (창 12:4, 5, 7) 그 일은 후에 니산월로 알려지게 된 달의 14일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출 12:41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구절에서는 여호와께서 “430년”의 끝 즉 기원전 1513년의 “바로 그날에”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고 알려 준다.
자손: 직역하면 “씨”. (부록 가2 참조) 여기서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갈 3:16 연구 노트 참조.
때까지: 바울이 “때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볼 때 율법이 영원히 지속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율법 계약은 그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끝나게 되었다.—롬 7:6; 갈 3:24, 25.
범법을 드러내기 위해: 바울은 모세 율법의 주된 목적이 “범법을 드러내는” 것, 이스라엘과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앞에 불완전한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범법”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롬 4:15 연구 노트 참조) 율법은 죄의 범위와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으로 밝혀 주었다. 따라서 바울은 율법이 범죄와 죄가 “많아지게”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율법이 많은 행동과 심지어 태도까지도 죄가 되는 것으로 밝혀 주었기 때문이다. (롬 5:20; 7:7-11. 고전 15:56 연구 노트 참조. 시 40:12 비교)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은 율법으로 인해 자신의 죄 많은 상태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 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율법에서 규정한 희생 제물들은 그들이 죄 많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계속 일깨워 주었다. (히 10:1-4, 11)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의 죄를 온전히 속죄해 주는 완전한 희생 제물이 필요했다.—롬 10:4. 이 구절에 나오는 자손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더해진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더해지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를 모세 율법의 일시적인 성격을 보여 주기 위해 사용한 것 같다. 특히, 아브라함과의 계약이 더 영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과 그 계약이 약속된 “자손”과 관련하여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고려하면 모세 율법이 일시적이라는 점이 더 두드러진다.—창 3:15; 22:18; 갈 3:29.
천사들을 통해 … 전해졌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율법 계약이 천사들을 통해 전해졌다고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하지만 행 7:53(연구 노트 참조)과 히 2:2, 3 그리고 이 구절에 나오는 영감받은 말씀은 그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아마도 천사들이 여호와로부터 권한을 받아 그분을 대표하여 모세에게 이야기하고 그에게 ‘증언’의 판 두 개를 준 것 같다. (출 19:9, 11, 18-20; 24:12; 31:18) 하지만 그 법을 실제로 주신 분은 여호와이셨다. 그리고 모세는 하느님의 임명을 받아 그분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그 계약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
중개자: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이 중개자는 모세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 즉 계약을 맺으실 때 그 사이에서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용어 설명 “중개자” 참조) “중개자”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시테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6번 나온다. (갈 3:19, 20; 딤전 2:5; 히 8:6; 9:15; 12:24) 그 단어는 법률 용어이다. 한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두 당사자가 평화와 우호 관계를 맺거나 회복하도록 또는 협정[즉 합의]에 이르도록 개입하는 사람 혹은 계약을 정식으로 확인하기 위해 개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모세는 율법 계약의 중개자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 계약을 지키고 그 혜택을 누리도록 도왔다. 예를 들어 모세는 그 계약이 발효될 때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다. (출 24:3-8; 히 9:18-22) 그는 제사장들의 임직식을 거행하고 제사직이 운영되게 했다. (레 8:1-36; 히 7:11) 또한 그는 600여 가지의 규정으로 이루어진 법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달했으며 그들을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여호와께 간청하는 일도 했다.—민 16:20-22; 21:7; 신 9:18-20, 25-29.
단지 한편만 관련된 경우에는 중개자가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계약 즉 약속은 여호와께서 하신 것이었으며, 그 약속이 이행될 것인지는 그분에게 달려 있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달해야 할 조건을 전혀 제시하지 않으셨다. (갈 3:18) 반면에 율법 계약은 두 당사자가 관련된 계약이었다. 그 계약은 모세를 중개자로 하여 여호와와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진 것이었다. (갈 3:19 연구 노트 참조) 이스라엘 민족은 계약 사항에 동의했고 율법에 순종하기로 신성한 약속을 했다.—출 24:3-8; 갈 3:17, 19. 용어 설명 “계약” 참조.
이 약속과 관련된 이는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직역하면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리스어 사본들은 이 부분에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일부 번역본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바울이 한 말은 신 6:4의 표현과 비슷한데, 그 구절에는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라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도 막 12:29에서 신 6:4을 인용하셨다.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동일한 구절을 롬 3:30과 고전 8:4에서도 언급한다.
죄 아래 넘겨 가두어 놓았습니다: “~ 아래 넘겨 가두어 놓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둘러싸다; 에워싸다”를 의미하며, 빠져나갈 가능성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상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단어가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면, 그물로 물고기를 에워싸 잡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눅 5:6) 이 단어는 죄 많은 상태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바울은 “성경이 모든 것을” 즉 죄지은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을 “죄 아래 넘겨 가두어 놓았다”고 말한다. 율법을 포함한 성경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인간 개개인이 얼마나 죄 많은 상태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갈 3:19 연구 노트 참조)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 아래 갇혀 있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다.
믿음이 이르기 전에는: 여기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갇혀 있었으며: 바로 앞 구절에서 바울은 사람들이 ‘죄 아래 넘겨져 갇혀 있다’고 말했다. (갈 3:2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는 다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 율법의 감시를 받고 있었으며 율법은 그들을 “나타나게 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보호자: 바울이 이 비유 가운데서 사용한 “보호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파이다고고스)는 문자적으로 “아이를 인도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가정 교사”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단어는 갈 3:24, 25과 고전 4:15에만 나오는데, 고전 4:1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을 그러한 보호자에 비유했다. (고전 4:15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참으로 적절한 비유를 사용한다. 그는 모세 율법을 남자아이를 매일 학교에 데려가는 보호자 또는 가정 교사에 비한다. 그러한 보호자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가 가정 내의 규칙이나 표준을 따르도록 돕고, 징계를 베풀 책임이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모세 율법은 하느님의 표준을 철저히 옹호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죄 많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이 “보호자”의 인도를 받아들인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하느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유일한 수단인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행 4:12.
믿음이 이르렀으므로: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벽하게 성취하신 유일한 분이었다. 그분을 통해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 즉 완전한 믿음이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성취하심으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여호와 하느님 앞에서 승인받은 신분을 누릴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해서 그분은 ‘우리 믿음의 완성자’가 되셨다. (히 12:2)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제도의 종결까지 모든 날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실 것이었다. (마 28:20) 따라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갈 3:24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이러한 논증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이 믿음이 이른 후로는 모세 율법이 효력을 잃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즉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때 주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들은 “한 몸” 즉 기름부음받은 자들로 이루어진 회중의 일부가 되며, 그 몸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전 12:13; 막 1:8; 행 1:5; 계 20:6. 롬 6:3 연구 노트 참조) 고전 10:2에서 바울은 비슷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도자 또는 해방시키는 자 “안으로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전 10: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습니다”. 이 그리스어 동사는 골 3:10, 12에도 나온다. 한 사전에 따르면 이 표현은 “자신 안에 그분의 정신이 가득 차게 되어, 그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마치 그분이 살았던 삶을 재현하는 것처럼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비슷한 표현 가운데 이 그리스어 동사를 사용했다.—롬 13:14 연구 노트 참조.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유대인 혈통인 사람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킨다. (용어 설명 “유대인” 참조) “그리스인”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 즉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롬 1:1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의 이 말을 볼 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누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지는 더 이상 아브라함의 육적 혈통인지의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모두 하나’이므로 그 백성 가운데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구분이 없다. (갈 3:26-29; 골 3:11)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나라 즉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이룰 사람들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서 선택하심으로 자신이 편파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주신다. (엡 2:11-18. 갈 6:1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이 진리를 갈라디아 속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그 지역에는 유대인, 그리스인, 로마인, 토착민이 섞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도 자유인도 없고: “종”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자유인”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사람으로서 온전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용어 설명 “자유인; 자유를 얻은 사람” 참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종인 그리스도인과 자유인인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예수의 귀중한 피로 사신 사람들이며, 따라서 하느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고전 7:22(연구 노트 참조), 23; 벧전 1:18, 19; 2:16.
여러분은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의 주된 부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창 22:17. 갈 3:16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직역하면 “아브라함의 씨”)의 이차적인 부분으로서 그 자손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밝힌다. (막 9:41; 고전 15:23) 이 이차적인 부분은 14만 4000명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다. (계 5:9, 10; 14:1, 4) 그 그리스도인들은 일부는 유대인이지만 대부분은 이방인이다.—행 3:25, 26; 갈 3: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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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24, 25에서 “보호자” 또는 “가정 교사”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이다고고스는 당시의 관습을 잘 반영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형편이 넉넉한 가정에서는 어린 아들을 보호자에게 맡겨 돌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종을 보호자로 두었지만 보호자로 일할 사람을 따로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가정에서는 보호자로 일할 종을 들이거나 보호자를 고용하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대개 보호자는 아이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일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보았다. 그는 아이가 가족과 함께 있지 않을 때는 늘 함께 있으면서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또한 아이의 행실을 지켜보면서 도덕적 교훈과 시정과 징계를 베풀었다. 보호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바울이 영감받아 쓴 고린도 전서에도 사용되었다.—고전 4:15.